마음의 양식이 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 시    

▲ 세월의 무게가 내려앉은 이생진 시인의 얼굴. 벌레에게 모든 것을 내어준 나뭇잎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충청뉴스라인 방관식 기자] 한평생을 시와 함께 살아온 노 시인은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넓은 시야가 중요하고, 넓은 시야를 갖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과의 소통과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다”고 했다.

20일 만난 섬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유명한 이생진(93) 시인은 과거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 방학이면 배낭을 메고 전국의 섬을 찾아다니며 시를 썼던 옛 추억을 떠올리는 듯 했다.

대표작 ‘그리운 바다 성산포’로 50여년 가까이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생진 시인의 고향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제주도가 아니라 충남 서산이다.  

어렸을 적 고향 서산에서의 인상 깊었던 바다와의 날카로운 만남은 이 시인을 섬과 바다로 이끄는 중요한 원동력이 됐다고 한다.

현대문학 등단 후 ‘바다에 오는 이유’, ‘그리운 바다 성산포’, ‘내 울음은 울음이 아니다’, 먼 섬에 가고 싶다‘, ’외로운 사람이 등대를 찾는다‘ 등 40여권이 넘는 시집에 실린 주옥같은 2천여점의 작품 중 이 시인은 ’벌레 먹은 나뭇잎‘을 애송시로 뽑았다.

외로움과 슬픔을 읊조리는 대표시인으로 인식되고 있는 이생진 시인이지만 ’벌레 먹은 나뭇잎‘에서는 청춘의 감성을 노래한다.

절친한 후배인 박만진 시인은 “벌레 먹은 나뭇잎이 예쁘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그래 남을 위해 베푸는 삶의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벌레 먹은 나뭇잎을 보며 벌레가 살아가도록 자기를 내어주는 것이라 생각한 시인의 시상(詩想)이 놀랍기 그지없다”고 감탄했다. 

오늘날까지 줄곧 좋은 시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온 노 시인의 검버섯이 핀 얼굴과 벌레에게 모든 것을 내어준 나뭇잎은 어쩌면 같은 길을 걸어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 90을 넘긴 나이지만 시를 쓰는데 있어서는 이생진 시인은 아직도 청년이다.

벌레 먹은 나뭇잎

나뭇잎은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 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은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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